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기업

죽은 테크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전기차 수소전지 VR 등 1800년대 테크 화려한 부활

이상덕 기자
입력 : 
2020-07-02 14:20:50
수정 : 
2020-07-06 14:39:39

글자크기 설정

“죽었던 테크놀로지들이 부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류는 화려한 제품과 서비스를 쏟아내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장치….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그동안의 테크놀로지들과 궤를 달리해 보인다.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충천해 움직이는 전기차들이 자율주행 기술과 접목돼 길거리를 누비고, 언택트(Untact) 물결 속에서 VR(Virtual Reality)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으로 세상을 살피는 풍경이 갈수록 흔해지고 있다. 또 인공지능들이 사람을 대신해 맞춤형 상품과 맞춤형 광고를 추천해 준다. 심지어 사람의 얼굴을 자유롭게 합성하는 딥페이크(Deep Fake) 영상물에 인공지능이 결합되면서 사람을 대신해 활동하는 인공지능 연예인마저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테크놀로지의 풍경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테크놀로지들은 오늘날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1800년 산업화 시대 한복판에 엔지니어들은 오늘날 마주했을 법한 테크놀로지들을 고안하는 데 골몰했지만 경쟁력이 없어 그 기술들은 사멸(死滅)해 나갔다. 그러나 새로 접목할 기술의 발전, 가격경쟁력의 확보, 환경의 중요성 등이 부상하면서 죽었던 테크놀로지들을 다시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이러한 물결들이 더해져 1800년대 죽었던 테크놀로지들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른바 ‘죽은 테크놀로지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이 1800년대 기술들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매경럭스멘이 살펴본다.

사진설명
1892년 모리슨 맥도널드 전기차, 사진 위키피디아
▶1890년 뉴욕 런던 누빈 전기차…

환경 이슈로 부활

전기차용 급속 충전 플랫폼을 제공하는 호주 스타트업은 트리티움(Tritium)이 6월 ‘플러그 앤 차지(Plug and Charge)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출시했다. 플러그 앤 차지의 서비스는 간편하다. 전기차 운전자의 가장 큰 고민은 충전소를 찾는 일인데, 트리티움이 이를 해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는 지정된 충전소에서만 충전을 해야 한다. 가정집 콘센트에 연결할 경우 전기 요금이 크게 달라 전기료 폭탄을 맞을 수 있고, 이동용 충전기라는 방편이 있지만 비상시에만 쓸 수 있어서다. 또 공공시설에 설치된 충전소를 가까스로 찾더라도, 일반 차량들이 주차해 있기 일쑤다. 그만큼 인프라는 요원한 일이다.

테슬라는 전용 급속 충전소인 ‘수퍼차저’를 보유하고 운영해, 테슬라 차량을 소유한 드라이버에게는 큰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일반 전기차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결제용 멤버십 카드를 후불로 정산하거나 신용카드로 현장 정산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특히 충전소마다 멤버십 카드가 달라, 전기차 운전자는 정산 카드만 몇 장씩 들고 다녀야한다. (한국은 2018년 8월부터 환경부 환경공단 민간 컨소시엄이 사업자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충전카드를 통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사진설명
트리티움의 플러그 앤 차지는 이런 고민을 해결한 서비스다. 콘센트에 전기차 코드를 꽂기만 하면 자동으로 차량에 내장된 암호 인증서를 인식해 즉시 결제되는 시스템이다. 즉 꽂고 뽑기만 하면 되는 서비스다. 그러나 이 같은 전기차용 충전 서비스는 그 기원이 상당히 거슬러 올라간다. 전기차 충전기의 태동은 1996년 제너럴모터스(GM)가 EV1을 출시하면서 함께 등장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그 기원은 1800년대 후반이다. 미국 화학자 윌리엄 모리슨(William Morrison)이 이미 1887년 충전식 전기차를 발명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 후 불과 몇 년 뒤인 1890년대에는 전기와 모터를 기반으로 한 택시 회사들이 창업 붐을 이뤘다.

영국 런던에서는 런던전기택시회사(the London Electrical Cab Company), 미국 뉴욕에선 전기마차회사(Electric Carriage and Wagon Company)가 각각 등장했고 이들은 총 2000대 이상 전기 택시를 운영하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당시에 이미 구독 경제 모델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GM이 주식을 일부 보유한 GeVeCo(General Vehicle Company)라는 차량 업체는 1907년에 배터리가 달려 있지 않은 전기 트럭을 판매했다. 사용법은 이렇다. GeVeCo 드라이버는 배터리 없는 트럭을 인도 받아, 하트포드일렉트릭라이트컴퍼니를 통해 충전된 배터리를 넘겨받아 사용했다. 배터리가 방전될 경우 일정 구독료를 내고 하트포드일렉트릭라이트컴퍼니를 방문해 충전된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방식이었다. 이 회사는 배터리의 600마일 사용을 보장했다.

1800년대 불어 닥친 전기 열풍에 온갖 사업 모델이 함께 태동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기차는 1935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멸해 버렸다.

자동차왕으로 꼽히는 헨리 포드 포드모터컴퍼니 CEO가 컨베이어벨트로 T형 차량을 싼값에 대량으로 찍어내자 그 경쟁력이 급격히 상실된 것이다. 당시 전기차들의 무게는 약 2t에 달했는데, 배터리 무게만 350~700㎏으로 무거웠던 것이 발목을 잡았다. 더욱이 1920년대에는 미국에서 텍사스주를 중심으로 대규모 유전이 발굴되면서, 휘발유 차량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까지 했다. 한동안 죽은 것으로 여겨졌던 전기차 기술이 새롭게 주목받은 것은 60년 뒤의 일이다. 지구적으로 환경오염 이슈가 불거지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량을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GM이 1996년 EV1을 출시하고 테슬라가 2008년 전기 스포츠카인 로드스터를 내놓으면서 전기차 시대를 열었다.

사진설명
1968년 이반 서덜랜드 하버드대 교수가 개발한 VR HMD, 사진 브리태니카
▶1839년 나온 연료전지와 포드를 넘어선 니콜라

수소연료전지(Hydrogen Fuel Cell)를 기반으로 픽업트럭을 내놓겠다고 발표한 스타트업 니콜라(Nikola)가 올해 6월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하면서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116년 역사의 포드를 시가 총액 면에서 한때 앞지르며 연료전지 시대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니콜라는 오는 2021년 트레일러 운반 트럭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트레버 밀턴 니콜라 CEO는 니콜라의 픽업 모델인 배저가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픽업트럭인 포드의 F-150과 경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형 F-15가 2만7380달러인데, 배저는 6만~9만달러대에 출시될 전망이다. 고가임에도 시장이 환호한 까닭은 운영비 때문이다. 니콜라는 1회 충전에 1900㎞ 이상 달릴 수 있는 시제품을 발표한 바 있다.

현대차는 니콜라에 앞서 달리고 있다. 작년 4월 현대차는 스위스 수소 에너지기업 ‘H2에너지’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이를 계기로 2025년까지 총 1600대 규모의 수소전기 대형트럭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날 주식 시장을 달군 수소연료전지 테크놀로지는 사실 그 기원이 16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1839년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로버트 그로브(Wliam Robert Grove)가 수소와 산소의 반응을 발견하고 만들어낸 그로브 셀이라는 수소연료전지를 마주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배터리는 닫힌계에서 화학적으로 전기에너지를 저장하는 반면, 연료전지는 연료를 소모하며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다르다. 연료와 산화제를 전기화학적으로 반응시켜 전기에너지를 발생시키는데 일반적으로 수소를 연료로 산소를 산화제로 이용한다. 화학 반응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열 가운데 80%가 에너지로 바꿀 수 있어 효율이 대단히 높다. 화학 반응 과정에서 나온 열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소형 발전소에 가깝다. 그로브 셀은 이러한 장점을 갖춰 1840~1860년대에 미국 전신 시스템에 주로 탑재됐다. 다른 배터리에 비해 전류와 전압이 높았다는 평가를 받은 것. 연료전지는 이후 NASA에서 1965년 유인우주선인 제미니 5호를 발사하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유인우주선에 물과 전기를 동시에 공급하는 목적이었다. 발전 장치의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되는 데다 사용 원료가 고갈될 가능성도 낮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테크놀로지는 대형화의 어려움과 당시 기술 발전의 한계로 화석연료에 밀렸지만, 1973년과 1978년에 잇따라 오일 쇼크가 발발하면서 비산유국을 중심으로 기술 고도화에 시동이 걸렸다.

일본은 1981년 에너지 절약 기술 개발 계획(Moonlight Project)을 추진하고, 국가차원에서 연료전지 개발에 뛰어들었고, 한국도 1985년부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한전기술연구원이 공동으로 5.9kW급 인산염형 연료 전지 본체를 수입해 실험을 실시했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오늘날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급부상 중이다. 글로벌 연료전지 시장만 2017년 50억3420만달러 규모에서 지난해 103억3200만달러로 성장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사진설명
플레이스테이션 VR 게임 아이언맨
▶VR의 모태 스테레오스코피

다모클레스의 검으로 발전

소니인터랙티브는 VR용 게임인 마블 아이언맨을 5월에 출시하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VR 헤드셋을 갖고 있다면, 349.99달러(약 43만원)를 지불하고 플레이스테이션 무브 컨트롤러 2개, 마블 ‘아이언맨’ VR 타이틀로 구성된 올인원팩을 구입할 수 있다. 사용자는 아이언맨을 가상현실에서 조정할 수 있는 것. 코로나19로 비대면을 일컫는 언택트(Untact)와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 연결(On)을 더한 신조어인 온택트(Untact) 시대가 찾아오면서 VR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아틸러리 인텔리전스(ARtillery Intelligence)가 미국 남녀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VR 헤드셋을 구입했다는 응답자 비중은 2019년 16%에서 19%로 상승했다. 또 구입자 55%는 VR에 만족했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VR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 27%만 VR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그만큼 VR가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VR 기술은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테레오스코피(Stereoscope)라는 입체경이 그 모태다. 1990년대 편광 안경을 구입해 안방 TV에 나오는 만화영화를 입체로 본 적이 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856년 발간된 ‘입체경의 역사, 이론, 제작’이라는 문헌에는 이미 오른쪽과 왼쪽에 비치는 이미지를 분리해서 입체경을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다.

사진설명
당대 혁신적인 기업가들은 이 같은 입체경을 재빨리 상업화했다. 1800년대 말 독일 베를린의 사업가인 아우구스트 푸어만(August Fuhrmann)은 ‘카이저 파노라마’를 설치해 수익을 거뒀다. 지름이 4~5m인 원통 주변으로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구멍을 뚫고, 그 내부에 각종 슬라이드를 넣고 돌리는 방식이었다. 원통 둘레에 앉은 관람객 25명이 원시적인 단계지만 입체 단편극을 볼 수 있었다. 1930년대에는 원통이 아닌 편광 필름을 활용한 입체 영화들이 속속 등장했다. 1939년 <뉴욕 만국 전람회>, 1940년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라는 단편 영화는 편광 필름을 기반으로 한 입체 영화다. 가상현실 입체영화에 대한 이 같은 개발 시도는 1968년 이반 서덜랜드 하버드대 교수가 가상현실 렌즈를 개발하면서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서덜랜드 교수는 오늘날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1966~1968년 하버드대에서 전기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제자인 밥 스프로울과 공동으로 오늘날 VR의 모태인 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를 개발해 낸다. 일명 다모클레스의 검(The Sword of Damocles)으로 불리는 HMD다. 당시 기록 영상을 보면 서덜랜드 교수가 HMD를 착용하고 방안을 둘러보면, 방 공간에 직육면체 가상 상자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개발한 HMD는 이듬해 NASA가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승무원을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에 이용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HMD는 공간을 많이 차지했고 소프트웨어도 빈약해 크게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사진설명
트리티움의 플러그 앤 차지
▶죽은 테크놀로지가 갑자기 부활하는 이유

죽었던 기술이 갑자기 부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생물학자인 닐스 엘드리지(Niles Eldredge)는 삼엽충 연구와 동일한 방법으로 트럼펫의 사촌인 코넷의 발전 과정을 분석했다. 그 결과 특정 순간에 특정 코넷이 다른 코넷들로 순식간에 가지치기해 가면서 발전(진화)을 해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생물과 달리 무생물인 기술은 오래 전에 사라진 테크놀로지의 특성을 직접 물려받는 것이 확인됐다.

글로벌 농기구 기업인 인터내셔널 하베스터(International Harvester)를 창업한 사이러스 매코믹(Cyrus Hall McCormick)이 자동수확기를 개발하면서 2000년 전에 나타났다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유럽의 톱에 영감을 얻어 자동수확기에 장착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상덕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